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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교양

내가 기억하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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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곡가를 잘 알지 못하던 시절 프랑스 작곡가의 곡을 들었습니다. 제 기억에 이렇게 멋진 프랑스 작곡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두근거림도 있었지요. Gabriel Fouré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멜랑꼴리라고 하는 특유의 감성, 그런데 단순한 멜랑꼴리라기 보단 프랑스 특유의 예술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감성이었습니다. 마치 프랑스의 카페에서 귀부인이 고급스런 문양이 새겨진 찻잔을 들고 따뜻한 햇살을 바라보는 듯한 감성. 이 감성이 Ballade에서도 유지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제가 자주 들었던 Ballade는 Brahms와 Chopin이 었으니 포레의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Ballade?

대중음악에서 이야기 하는 음악장르 ‘발라드’와 클래식 음악에서 이야기 하는 ‘발라드’는 완전히 다릅니다. 시작은 프랑스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뜻한 것이었는데 낭만시대에 와서는 서사적이고 영웅적인 이야기가 강조되어 웅장하고 대담한 악상의 곡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Chopin의 Ballade No.1입니다. 영화‘피아니스트’에서 전쟁의 잿빛과 슬픔을 이 곡에 빗대기도 하였습니다. 포레의 발라드는 그런 면에서 밝음과 낙천적인 성격이 있으며 때로는 우아한 기풍이 담겨 있어 좋은 비교가 됩니다.

 

 

Nocturne은 원래 태생자체가 멜랑꼴리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런데 이 녹턴도 포레의 것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기품이 느껴지는 녹턴, 그리고 그 연주를 묵묵히 해냈던 피아니스트. 연주자는 우리가 잘 아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였습니다.

 

포레 연주를 들은 후 그의 연주를 계속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는 이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것 같았고 젊은 음악가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흥행성, 체력적인 한계, 방대한 연습 일정 등 피아니스트에게 부담이 따르는 레퍼토리인 만큼 백건우씨의 연주는 연주력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음악적 해석으로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연주를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그의 연주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단연 ‘Beethoven Sonata’전곡 연주일 것입니다. 클래식음악이 일상이 되지 않는 대한민국. 우리나라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저렇게 완벽에 가깝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한 곡 한곡 엄청난 연주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숙제와도 같은 ‘베토벤소나타’. 그의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연주가 빛났던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만 그의 팬미팅 티켓을 지인으로부터 받게 되어 실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질의 응답시간에 이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모든 진심을 담아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질문 이상의 답변을 주었으며 그의 답변을 듣는 것만으로도 음악가의 길을 걷는 제게 큰 도움이 되었 습니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합니다. 내용만큼 중요했던 것은 그의 진심이 담긴 정성과, 겸손함이었습니다.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한 피아노의 거장이 우리곁에도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당시 현장에서 제가 직접 기록해 둔 것입니다." 

 

 

Q : 이번에 베토벤소나타 전곡을 연주하시면서 연습과정에서 특별히 까다롭게 다가온 곡이 있었는지요.

 

A : (잠시 생각에 잠기시다가) 피아니스틱 하게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들은 꽤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그런 테크닉적인 부분자체가 어렵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곡 해석과 이해가 없으면 연습도 안되고 테크닉도 잘 안따라주지만, 곡을 이해하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연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테크닉이 따라오게 됩니다. 즉 곡을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 베토벤 소나타 중에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인지요?

 

A : (역시 한참 생각에 잠기시다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곡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좀 더 넓히면 제가 가장 난감해 하는 질문이 “어느 작곡가를 좋아하는가?”인데, 사실 저는 작곡가들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그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어느 누가 더 좋고 싫고를 쉽게 매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곡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 작곡가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동안 베토벤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Q : 훌륭한 지휘자들을 보면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옮겨간 부분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나중에라도 그렇게 연주의 폭을 넓히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혹은 잠깐이라도 외도(?)의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지?

 

A : 예전에 저도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교향곡을 듣고 “나도 나중에 저런 연주를 해야 겠구나.”하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는 접하면 접할수록 무한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휘자로 옮겨가게 되면 피아노나 지휘나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음악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제 자신에겐 피아노하나면 충분하며 그 이상 다루기가 벅찹니다. 피아노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피아니스트가 기억난 것은 얼마 전 불미스러운 언론보도를 보고 난 뒤였는데, 인터뷰 내용에도 부인과 어떻게 지내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Q : 선생님께서는 부부가 같이 여행을 다니시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특별히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어디인지요?

 

A : 남미를 제외하곤 전 세계 곳곳을 아내와 다녔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며 보고 느끼고 그랬는데 딱 한번 연주와 관련이 없는 여행을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집트를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문명이 어떻게 생기고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면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백건우씨의 연주를 기억합니다. 음악가의 연주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연습량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 속의 섬세한 감성은 내면에서 나옵니다. 저는 작년 코로나19로 힘든 대한민국을 위해 백건우씨가 들려준 피아노 연주곡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Schumann의 작품 숲의 정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31RlNKyq0

거장이 들려주는 치유의 음악 한 번 들어보실래요?

 

 

백건우씨의 생활이 안 좋은 방향으로 이슈화 되는 것을 보면서 제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는 거장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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