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문화는 제도보다 오래된 습관에서 만들어진다.
일터 한복판에서 ‘내 위치’를 세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들어가며 : “내 위치는 어디일까?”
청년 시절, 택배회사에 일일 아르바이트를 나간 적이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택배 상자를 커다란 트럭에 상차하는 일이었는데,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그때 누군가 어눌한 한국말로 짜증 섞인 말을 던졌다. 요지는 ‘빨리빨리 하라’는 것이었는데, 외국 억양이 묻어나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투와 분위기만으로도 불쾌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건, 그가 힘든 상차 작업 대신 컨베이어 벨트 쪽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1장 : 하루 종일 트럭에 상차하던 날
궁금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은 잘 모른다고 했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그 외국인 노동자는 정직원도 아니고 시급도 같지만, 오랜 시간 그곳에서 버티며 일하다 보니 어느새 터줏대감이 되었고, 누구보다 그곳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관리자가 아님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시를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골라 맡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몸으로 부딪혀보니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일은 고되고 처우도 좋지 않아 장기 근무자가 거의 없었다. 하루나 이틀 만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고, 석 달 이상 버티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 속에서 오래 남아 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게 되었고, 관리자가 부족한 심야 시간에는 사실상 현장을 움직이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2장 : 오래 버틴 자가 만든 규칙, 현장 문화로 굳어지다
시간이 흘러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관리자와는 별개로, 현장 곳곳에는 경력자들이 자기 식의 규칙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신규 사원이나 단기 알바들은 그 규칙을 따라야 했다. 일 특성상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들의 방식은 일종의 ‘현장 문화’처럼 굳어졌다.
반년 이상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요령이 생긴다.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요령이 단순한 개인의 노하우에 머물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는 집단의 규칙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회사가 정한 규정이나 절차보다 그들의 해석과 습관이 우선되기도 한다.

3장 : 위치가 권력이 된다 — 작은 권력의 작동 방식
그래서 그들의 위치는 단순한 ‘일꾼’이 아니라, 작은 권력을 가진 ‘문화의 형성자’가 된다.
신규 사원은 그 자리에 발을 들일 수 없고, 만약 기존의 요령과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면 곧바로 제지당한다. 때로는 불합리해도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규칙이 된다.
조직의 문화가 제도와 규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틴 몇몇 사람의 해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 작은 권력은 공식 직책이 없어도 작동한다.
묵묵히 버틴 사람, 오래된 방식에 익숙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중심에 선다. 하지만 그 중심이 모두에게 편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막고, 외부인을 불편하게 만든다.
4장 : 나의 위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나는 이런 광경을 보며 자주 질문을 던진다.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 만든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이끄는 것, 그것이 한편으론 부러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해석대로 굳어진 문화가 때로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내 위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는 곧 ‘내가 어떤 문화를 만들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곳곳에는 이런 모습이 있다.
직장에서도, 동아리나 모임에서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자기 방식대로 문화를 만든다. 그 문화가 협력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배타적 권위를 세우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문화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맺음말 :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향하여
누구나 위치를 갖는다.
하지만 그 위치가 누군가를 억누르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자리였으면 한다.
나는 그쪽에 가까운 위치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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