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클래식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하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 모음집이었다.
클래식을 잘 몰라도 쉽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공부하기 전에도, 단순히 ‘좋다’는 감정만으로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를 검색하면 ‘1세’, ‘2세’, 그리고 ‘조세프’가 함께 등장한다. 모두 한 가족이다. 1세 요한 슈트라우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왈츠와 폴카의 기틀을 다졌고, 유명한 〈라데츠키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의 아들들인 2세와 조세프 역시 뛰어난 음악가였다.
그중에서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내가 소개하는 사람이 바로 “2세”다. 그는 단순히 음악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당시 빈(Vienna)의 낙관적인 정신을 음악으로 번역해낸 인물이었다.

“어? 이거 들어봤는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광고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 자주 사용되어 한 번쯤은 귀에 익은 선율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음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지녔다.
그가 작곡한 선율들은 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심지어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그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다.
그의 음악이 이렇게 친숙한 이유는 단순한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감정, 유머, 여유가 녹아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다는 것은 결국, 삶 속에 잠시 숨겨둔 즐거움을 다시 꺼내는 일과도 같다.
낙천적인 음악
그의 음악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한마디로 ‘밝음’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곡에는 유쾌함, 익살스러움, 사랑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건 단순히 ‘즐거운 음악’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살던 시대의 빈은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변동이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웃고, 음악을 즐겼다. 슈트라우스의 낙천성은 그 시대의 현실 도피가 아니라, 삶을 견디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었다.
선율이 너무 좋다
브람스는 생전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려한 선율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음악에는 매끄럽게 흐르는 선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보통의 고전 음악이 하나의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식이라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끝없이 새로운 선율이 등장하며 곡을 다채롭게 이끈다.
이런 구성 덕분에 그의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어디서 끊어야 할지’를 생각할 틈이 없다.
모든 구절이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이어지며, 마치 이야기 속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듯 이어진다.
그의 선율은 화려함과 우아함, 친숙함,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풍성한 오케스트라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관현악곡이다.
그의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의 축제의 공간이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흐름, 금관의 힘찬 울림, 목관의 색채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그는 ‘리듬의 설계자’였다. 3박자의 단순한 박자인데,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빼어나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귀뿐 아니라 몸도 함께 반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 〈남국의 장미 왈츠〉 (Rosen aus dem Süden, Op.388)
: 남국의 햇살과 장미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선율, 요한 슈트라우스의 세련된 감성이 절정에 이른 작품.
• 〈황제 왈츠〉 (Kaiser-Walzer, Op.437)
: 위엄과 낭만이 함께 흐르는 곡. 궁정의 품격 속에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진다.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314)
: 빈의 상징이 된 곡.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 곡은 평화와 풍요, 빈의 자부심을 심어준 곡이다
도미솔 이라는 아주 단순한 화음을 유려하게 풀어낸 작품, 특유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율이 돋보인다.
• 〈천둥과 번개 폴카〉 (Donner und Blitz Polka, Op.324)
: 제목 그대로 짜릿한 리듬감과 유머가 살아 있는 곡. 연말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듣는 순간 활력이 생긴다.
• 오페레타 〈박쥐〉 (Die Fledermaus)
: 화려한 무도회와 인간적인 풍자가 어우러진 무대.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머 감각과 낙천적인 작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연말에 자주 공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페라 입문작으로 가장 추천한다.
덧붙임
카를뵘(Karl Bohm 1894~1981)이 지휘한 버전은 특유의 색채감을 잘 살렸고, 특히 당김음 같은 리듬감을 부여하여 빈 정통왈츠를 잘 해석하였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여러 버전들은 지금들어도 손색없는 명반이 많다.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의 연주는 요한 슈트라우스 특유의 낙천성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활기가 넘친다. 어떤 버전을 들을 지 모른다면 이 두 버전을 추천한다.
마무리하며
클래식을 어렵게 느낀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부터 들어보자.
그의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음악이다.
듣다 보면 어깨가 들썩이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가 남긴 음악의 힘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건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삶의 낙관’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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